Artist's Note
※작가관
작품은 주로 인간의 이기심과 관점에 따른 가치판단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탐구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인간에 의해 발생한 사회문제(예: 전쟁, 경제, 환경 등)를 통해 방관하거나 방치의 결과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고찰하고, 가식으로 얼룩지거나 과장으로 포장된 현대인의 모습을 관찰하여 작가로서의 활동에 빗대어 표현한다.
작품을 통해 관객이 소통할 때 중의적으로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제목, 내용, 공간, 디스플레이 방식을 복합적으로 활용한다. 전시기획 자체를 통해 관객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나아가 다양한 해석을 통해 자신만의 의미와 반성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인간의 이기심과 방관의 결과로 발생하는 사회문제들을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시도해 창작의 폭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창작의 지향점
‘생산과소비’시리즈들은 현대사회의 과대한 생산과 소비에 따른 폐허와 이를 인간의 잣대로 암묵적으로 지나쳐왔던 이기심들을 환경문제에 빗대어 표현한다. COVID-19 감염병의 대유행을 지나면서 더욱 대두된 환경문제들은 다양한 곳에서 사회 및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동반되고 있지만 이와 반대로 친환경이라는 탈을 쓴 채로 이윤만을 추구하는 뒤틀린 이익집단 또한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가치를 이용한 제품, 활동 등에 환경운동가에 빙의한 듯한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이다. 작금의 모습들은 환경보호나 친환경이라는, 중요하고 신중해야 할 가치들이 마치 명품처럼 자랑거리 정도로 전락해 가는 느낌이다. 이에 따라 ‘Greenwashing-Pretty trash’(위장환경주의-예쁜쓰레기)라는 내용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그 문제점을 함께 인식하는데 본 창작활동의 목적이 있다.
※작가노트
3. Greenwashing-Pretty Trash / 위장환경주의-예쁜쓰레기
‘가치소비’는 자신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가성비와 만족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합리적 소비를 뜻한다. 이는 현대 소비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이 가치라는 것은 대중매체와 주위 시선에 의해 왜곡되거나 타의적으로 결정되곤 한다. 매체에 많이 노출될수록 유행에 휘둘리게 되며, 이는 결국 물질적, 감정적 소비로 이어진다. 과연 이러한 ‘가치소비’는 진정 올바른 소비활동이며, 개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예쁜 쓰레기’는 외형만 예쁘고 실제로는 쓸모없는 물건을 의미한다. 이는 현대 소비문화에서 ‘가치’라는 관점에 치중된 표현이다. 하지만 쓰레기는 본래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는 폐기물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쁜 쓰레기’ 라는 표현은 다소 위화감을 준다.
혹시 당신은 마케팅과 상술에 현혹되어 유행에 편승한 소비문화에 가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친환경, 가치, 제로웨이스트 등의 그럴듯한 말로 자위하며 위안 삼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예쁜 쓰레기’라는 말도 현대인들의 소비심리를 빗댄 ‘Greenwashing’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작품을 통해 대중들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함께 고민하기를 바란다.
2. Production and Consumption(series) / 생산과 소비 (시리즈)
#1 낙수효과는 부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것으로 밝혀진 현재, 부자는 더 큰 부를 축적하고 가난은 되물림 된다. 더 이상 정부와 기업의 정책이념은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가득찬 그릇은 넘쳐흐르지 않고 더욱 큰 그릇으로 바뀌어 간다.
술과 담배는 서민들의 애환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생산되어 온 기호식품이다.
하지만 작금에 이르러 이 기호식품에 대하여 ‘국민건강을 위한 대책’이라고 둘러대며 ‘서민증세’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잊어버리고 또 다시 소비하고 만다. 이미 칼날은 살며시 목을 베고 있으나 알지 못한다. 나는 생산과 소비 이후에 버려지고 짓밟힌 담배곽에서 그 흔적을 느꼈다. 그래서 소비 이후에 쌓여진 문제(쓰레기)들을 고찰하면서 현 사회의 문제와 생각들을 조립하려 한다.
#2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생산의 대량화는 삶의 질을 높이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생산을 넘은 생산과 그에 따라 소비를 넘은 소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물론 과소비는 생산자의 과한 홍보 및 포장효과 때문임이 더 클 것이다.)
이 문제는 식자재에서도 드러난다. 소, 돼지, 닭과 같은 가축의 대량생산을 위해 대량생산된 사료를 먹이고 이는 결국 환경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 더한 문제는 과생산된 상품들은 분배로 이어지지 않고 수익으로 남지 않는다면 차라리 폐기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식품유통 시스템 하에 식품공급량이 과하게 늘어 식품가격은 떨어졌지만 기아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세계의 영양과다(비만)인구만큼 영양부족인구가 가득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의 문제를 극복하고 통제권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걸까.
작가는 일단 직접적인 식자재 문제는 추후에 다루려 하지만 이는 결국 생산과 소비 아래 공통된 문제다. 일반적으로 유흥에 사용되는 생산품들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담배와 술을 대표적으로 야기할 수 있다.
담배와 술은 국민들에겐 기호 식품으로, 정부에겐 세금을 위한 목적으로 소비가 되고 있다. 그 자체가 무익함에도 이익과 소비의 목적에 의해 생산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 이후에 우리에겐 무엇이 남아있는가. 정부에서 걷어간 세금, 소비 후 남은 쓰레기들.
사람들은 소비 이후에 나타날 문제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소비된 것들이 우리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드러나 있지 않기에 언론에서 전해오는 세금문제, 환경보호관련 문제로 전해들을 뿐 실질적으로 체감 못하고 있고, 자신이 저지른 사소한 일들이 어떠한 파급효과를 일으킬 것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정치적, 환경적 요인을 포괄해 ‘생산과소비’라는 명목 하에 고찰하려 한다.
앤디워홀이 대량생산과 소비에 관한이야기를 서술했다면 작가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하려하는 바이다.
1. D-182500 (series) / 디데이-182500 시리즈
#1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은 자정작용에 의해 스스로 정화를 이루어 낸다고 하지만 이미 인간은 자정작용 속도보다 더 빠르게 자연을 파괴하고 있으며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현대에 도시들은 더욱 규격화되고 그 도시 속에서 순수한 자연물은 찾아보기가 힘들며,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조형된 자연을 가장 많이 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더 인식하지 못하고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것을 알고 교육 받아 왔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결국 자신의 편의가 우선시되고 자연에 대해 이기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쉽게 꽃을 꺾거나 밟기도 하고 동물들을 학대하기도 한다. 게다가 작은 쓰레기 하나에서부터 산업폐기물을 버리기까지, 개인과 기업에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의 힘을 맹신하며 또한 무시하는지를 알 수 있다. 자연에서 작은 하나를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 하나뿐인데’, ‘나 하나쯤은’ 하는 생각들로 이를 비웃으며 넘어 간다.
#2 사람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선과 악에 대하여, 또는 착하다와 나쁘다,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하여 교육받으며 성장해 왔다. 예를 들어 어른을 공경 하는 것, 훔치지 않는 것, 환경을 보호 하는 것 등 개인적으로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부분까지, 광범위한 사회의 전반적 가치를 아울러 도덕, 윤리, 법이란 규칙아래에 서로를 배려 할 수 있도록 배워 온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그 과정이 무색할 정도로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며 옳은 것이라 공통적으로 정의된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초·중·고 기초학문을 거치고 배워왔으며, 인지하고 알고 있는 부분인데도 정작 눈앞의 이익엔 눈이 멀어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사람을 본디 악한 것으로 본다. 사람을 극단적인 ‘악’에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기만을 생각하며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채 욕심내는 것을 의미 한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 범위가 사람 뿐 아니라 자연에까지도 미쳤으며 서로 동화되는 삶을 추구하여 왔다. 마음속에 있는 악을 다스려 서로 더 조화로울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문제들, 그 문제가 심각하지만 안일하게 넘어가는 부분들, 순간적인 욕심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부분 등에서 가장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주위에서 사람의 욕심이 묻어 있으나, 가장 사소하고 죄책감을 받지 않는 부분은 ‘사람↔사람’의 관계보다 ‘사람↔자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길을 걷다보면 버려진 쓰레기들을 흔히 볼 수 있고, 사람들은 그만큼 쉽게 지나치고 있다. 작게는 담배꽁초부터 크게는 산업폐기물까지, 많은 사람들이 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순간의 편의를 위해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양심은 양심으로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그렇게 내던져 지고 있다. 이미 세상엔 쓰레기로 가득 찼다. 나는 지금부터 그 쓰레기를 재조명 하려 한다.